오늘은 영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에 대해 리뷰를 해볼까 한다. 사실 어떤 영화를 리뷰할지 고민을 많이 하다가, 나의 인생 영화를 한번 해보자라는 마음이 들었고, 그래서 고르게 된 것이 바로 이 영화이다. 왜 이 영화를 인생 영화로 뽑았는지는 리뷰를 하면서 천천히 얘기해보도록 하겠다.
감독: 스티븐 달드리
책 읽어주는 소년, 그리고 사랑
이 영화의 초반부에는 10대의 어린 소년 마이클 버그(데이비드 크로스)와 30대 여성 한나 슈미츠(케이트 윈슬렛)의 위험(?)하지만 순수한 사랑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에겐 사랑을 나누기 전 반드시 치르는 의식(?)이 한가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마이클이 한나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이다. 한나는 직접 책을 읽지 않고 굳이 그에게 읽어달라고 한다. 왜일까. 사실 그녀에겐 비밀이 하나 있었고, 그것은 그녀가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문맹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녀에겐 그 사실이 엄청난 부끄러움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녀는 마이클이 읽어주는 책의 내용에 빠져들어 때론 웃음 지으며, 때론 슬프게 울기도 한다. 사실 이 영화에서 그녀가 문맹이라는 설정은 아주 중요하지만, 모든 이유를 다 떠나서 단지 한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책을 읽어주는 모습은 정말 순수하고 아름답게만 보였다. 그게 그들의 사랑을 단지 육체적인 것으로만 묘사하지 않게 하는 것 같아서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무지라는 것의 죄악
그렇게 아름답기만 했던 그들의 사랑에도 끝은 오고 만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줄만 알았던 그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현실의 간극에 부딪히게 되고, 그러던 중 한나는 다니던 직장에서 사무직으로 승진됐다는 통보를 받는다. 하지만 사무직은 문맹인 그녀에게는 무리였고, 한나는 결국 마이클을 남겨둔 채 살던 곳을 떠난다. 그리고 8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마이클은 로스쿨에 진학을 하는데, 우연히 견학을 갔던 법정에서 전범 재판의 피의자 신분으로 앉아있는 한나를 목격하게 된다. 그녀는 과거 유태인 수용소에서 경비로 일했던 경력이 있었다. 수용소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들은 유태인들을 죽음으로 내몰게 한 보고서에 최종적으로 서명을 한 것이 그녀라며 몰아가고, 재판장은 보고서의 서명과 한나의 필체를 비교해 보려고 한다. 여기서 그녀는 선택의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자신이 문맹이라는 것을 밝히느냐 마느냐. 하지만 그녀는 결국 보고서에 서명을 한 것이 자신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이 장면을 보는데 마음이 왜 그렇게 먹먹해지던지. 문맹이라는 사실이 도대체 그녀에게 어느 정도의 부끄러움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여기서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은 문맹이라는 것의 의미이다. 아마 영화에서 글을 읽고 쓰지 못한다는 것은 단순하게 거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모든 것으로의 무지로 연결된다. 그 무지 뒤에는 그것으로 인한 죄악이 뒤따른다. 그렇다면 문맹이었다고 해서, 무지했다고 해서 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그것이 과연 면죄부가 될 수 있을까. 답은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죄악의 댓가는 그 무엇보다도 무겁고 지독하다. 여기서 나는 한나라는 인물에 빙자해서 나를 포함해 영화 속의 전쟁을 겪은 세대와 그 전후 세대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과연 우리가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갖지 않고, 그 무지 뒤에 뒤따라오게 될 죄악에 대해 부끄러움을 가졌었더라면 어떠했을까 하고 말이다. 그랬다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깨우침과 죄의 무게
한나는 감옥에 있으면서 마이클이 보낸 녹음 테이프를 들으며 글을 깨우친다. 그리고 가석방이 확정됐을 때 마이클을 다시 만난다. 그녀의 기대와는 다르게 마이클은 냉담한 어조로 그녀에게 감옥에서 무엇을 깨달았냐고 묻는다. 그리고 그녀는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글을 깨우쳤다고. 하지만 이 영화에서 글을 깨우쳤다는 것은 결코 어떤 계몽적인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가 무지에서 벗어나면서 마주하게 된 진실은 그녀가 저질렀었던 과거의 죄들이었을 것이다. 깨우침과 동시에 그 죄들은 전에 없던 무게로 그녀를 짓눌렀을 테다. 그리고 그러한 짐을 짊어진 그녀에게 유일하게 남아있었던 삶의 의미인 마이클조차 다시 만나게 됐을 땐 냉담과 책망의 태도로 그녀를 대한다. 그 순간 그녀에겐 삶의 이유가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녀가 글을 깨우친 것이 다행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것이 그녀가 속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를 바란다.
이상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에 대한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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