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리뷰해 볼 영화는 바로 <레퀴엠>이다. <레퀴엠>은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영화로 2002년에 개봉했다. 이 영화는 마약이라는 것이 사람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 잘 보여준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개인적으로, 금기시되는 쾌락의 대가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느끼게 됐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영화의 리뷰를 시작해보도록 하자.
감독: 대런 아로노프스키
쾌락의 중독
이 영화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다 마약에 중독되어 있다. 중독은 더 큰 중독을 부르고, 그들은 그 속에서 점점 더 각자의 나락 속으로 떨어진다. 마약 중독자인 해리 골드팝(자레드 레토)과 타이론 C. 러브(마론 웨이언스)는 마약 중간 유통으로 큰돈을 만지려 하지만 그마저도 잘 되지 않고, 해리는 결국 약을 하기 위해서 자신의 애인인 마리언 실버(제니퍼 코넬리)에게 다시 몸을 팔라고 한다. 마리언도 약 중독자로 그들과 별반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다. 해리의 엄마인 사라 골드팝(엘렌 버스틴)은 자신이 좋아하는 TV쇼에 출현하고 싶은 환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살을 빼기 위해서 병원에서 처방해준 다이어트 약을 복용한다. 이 약에는 마찬가지로 마약 성분이 들어가 있다. 그녀도 다른 세 인물처럼 점점 그 약에 중독되어간다. 그리고 그들의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오직 끔찍한 비극뿐이다. 마약이라는 것이 그들에게 안겨주는 쾌락은 무엇보다 달콤하고 환상적이겠지만, 실제로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는 제삼자의 입장의 눈에 보이는 것은 점차 타락해가는 그들의 모습이다. 인간은 쾌락의 맛을 보고 나면, 그 맛에서 헤어 나오기 쉽지 않다. 그리고 이내 그들에게 남게 되는 것은 그 쾌락을 위한 것들뿐이다. 그들에게는 그것 말고 다른 것은 더 이상 남지 않는다. 쾌락만이 그들의 삶 전체를 차지해버린다. 그것이 반대로 삶을 얼마나 피폐하고 나락으로 빠뜨리는 것인지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면서 깨닫게 된다. 그리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그것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쾌락의 끈을 놓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중독이라고 부른다.
중독의 대가
이 영화를 봤을 때, 우리는 단순히 마약이라는 소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생에 있어서 어떠한 달콤함만을 무조건적으로 쫓게 되었을 때 받게 되는 대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마치 등가교환의 법칙처럼 달콤함의 농도가 높으면 높아질수록 인간이 잃게 되는 삶의 가치나 시간들 또한 늘어나게 되어 있다. 당장의 쾌락만을 쫓게 될 때 그 쾌락은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결국 그것들은 시간성을 갉아먹는다. 우리는 달콤함이 지속되길 원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것들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시간은 너무나도 짧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들을 더욱 갈망하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쾌락의 덫에 결려들게 된 순간, 인간에게는 쾌락만 남게 된 채 모두 불타고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어찌하겠나. 그것을 선택한 것 또한 인간의 자의인 것을. 그 어리석음의 대가를 영화 속 인물들은 경험하며 절규한다. 정말 그들은 자신들의 끝이 어떨지를 몰랐을까. 아니면 모든 걸 알고서도 그 쾌락이 자신들의 삶과 맞바꿀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건 아마도 어느 쪽이 맞는 것인지 그 자신들도 몰랐던 건 아니었을까. 인간은 왜 쾌락에 쉽게 중독되고 망가지게 되는 것인지, 많은 생각들을 해보게 되는 영화였다. 이상 영화 <레퀴엠>에 대한 짧은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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