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리뷰해볼 작품은 바로 영화 <굿 윌 헌팅>이다. 이 영화는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영화로 1998년에 개봉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통해서 상처를 받듯이, 치유를 받는 것 또한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라는 것을 이 영화는 잘 보여주고 있다. 작품 속 맷 데이먼과 로빈 윌리엄스가 서로에게 건네는 말이나 제스처, 섬세한 감정 묘사 같은 것들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이 영화에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영화 리뷰를 시작해보도록 하자.
감독: 구스 반 산트
마음으로 다가간다는 것
윌 헌팅(맷 데이먼)은 엄청난 두뇌를 가진 천재다. 그는 MIT 학생들이 못 풀어낸 수학 문제를 너무나도 손쉽게 풀어내고, 문제를 낸 교수보다도 훨씬 똑똑하다. 하지만 그는 어렸을 적 경험했던 학대 때문에, 자신의 친구들 말고 다른 사람에게는 일절 마음의 문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 그때 그가 만나게 되는 사람이 바로 숀 맥과이어(로빈 윌리엄스)다. 번번이 윌에게 골탕을 먹었었던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숀에게는 그의 뛰어난 머리 같은 것은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숀은 사람을 대할 때 머리로 계산하면서 다가가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처음에 윌은 다른 사람에게 하듯이 그를 골탕 먹이려고 한다. 하지만 오히려 윌은 숀에게 기선을 제압당하고 만다. 숀이 심리학 교수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데 있어서는 윌보다 한 수 위인 셈이다. 마음 대 마음을 놓고 마주 본다는 것은 어떠한 거짓 꾸며냄이나 간계 같은 것도 없이 서로가 벌거벗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도 같다. 그렇게 되는 순간 머리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린다. 똑똑한 게 뭐? 천재가 뭐? 너는 그저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불쌍한 애송이에 불과해! 하고 숀은 윌에게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것은 진실이다. 윌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나약한 부분을 남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더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 숀은 그런 그의 나약한 부분을 비집고 들어가서 그를 무력화시킨다. 마음에 있어서 숀은 견고한 어른이고, 윌은 쉽게 깨어져 버리는 아이다. 그리고 그 아이는 이 진정한 어른에게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상처, 그리고 위로가 되어주는 존재
하지만 숀이 진정으로 윌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또한 마음의 상처를 지니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죽은 아내에 대한 미안함, 실패자로 낙인 찍힌 삶 같은 것들은 숀의 삶을 따라다닌다. 윌과 숀은 서로 대화를 한다. 그리고 그 대화 속에는 가끔씩 그들의 아픔에 대한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거기에는 그 둘밖에 없으며, 그들은 더 이상 거짓으로 그것들을 숨길 필요가 없다. 윌이 숀을 통해 치유를 받는 것처럼, 숀 또한 윌로 인해 마음의 치유를 받는다.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존재로 바뀌어간다.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숀이 똑똑해서도, 유식해서도 아니다. 숀은 윌과 동등한 위치에 자신을 놓고 윌을 동정의 대상으로 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도 그와 똑같은 상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숀은 윌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숀은 마침내 그런 윌이 간직하고 있던 마음의 상처에 대고 이렇게 말한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었다라고. 그 순간 윌은 그동안 억눌러만 왔었던 감정을 터뜨리며 어린아이처럼 서럽게 운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슬퍼서만 우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대상이 있음에 안도하는 기쁨의 눈물 이리라. 우리는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어떻게 대할까. 거의 대부분이 계산적으로 대하지는 않는가? 진정으로 사람을 사귀고자 한다면 이 영화를 보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이상 영화 <굿 윌 헌팅>에 대한 짧은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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