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리뷰해볼 작품은 바로 <악마를 보았다>이다. 영화를 보신 분들 중 이 영화를 떠올릴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어떤 장면들이신지? 나는 그런 장면을 꼽으라면 마지막 수현(이병헌)의 복수 신을 꼽겠다. 그중에서도 복수를 마치고 혼자서 걸어 나오는 장면은 잊을 수 없다. 여러 가지 감정들이 혼재된 듯한 수현의 표정 변화는 말로 설명하기가 부족하다. 아마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내가 어떤 얘기를 하는 건지 아실 거다. 복수를 하긴 했지만 결코 복수를 했다고 할 수도 없는,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은 그런 복수. 그걸 깨달았을 때 몰려오는 허탈감과 공허감. 보면서 어떻게 저런 연기를 할 수 있는지 감탄스러웠다. 자,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리뷰를 해보도록 하겠다.
감독: 김지운
복수심의 조건
인간에게는 무수히 많은 감정들이 내재해 있지만, 그중 복수심이란 감정은 어떨 때 생겨나게 되는 것일까. 거기에는 두 가지 필수요인이 있어야 한다. 하나는 가장 소중한 대상의 상실이고, 다른 하나는 그 대상을 상실시키게 만든 또 다른 대상의 존재이다. 소중한 대상을 상실하게 된 주체는 그 대상에게 쏟아붓던 애정을 복수심으로 탈바꿈해 상실의 원인인 다른 대상에게로 향한다. 영화 속의 수현이 그렇다. 그는 자신의 소중한 대상을 빼앗아간 경철(최민식)을 향해 복수를 결심한다. 그 복수는 가장 오랫동안 고통을 주면서 죽이는 방식이다. 그는 사냥개가 먹잇감을 잡았다 풀었다를 반복하듯이 경철을 반쯤(?) 죽여놓고 풀어주기를 반복한다. 그게 그가 생각한 가장 고통스러운 복수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나는 여기서 그가 왜 이런 복수의 방식을 택했을까 궁금했다. 그리고 이런 결론을 내렸다. 그것은 그가 가지고 있던 복수심이라는 감정이 원래는 소중한 대상을 향하던 애정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애정을 줄 대상을 잃은 그는 복수를 할 대상을 찾고 그것을 행한다. 그런데 그 복수의 대상마저 사라져 버린다면 그 복수의 감정은 다시 정체성과 대상을 잃고 수현의 마음속에서 응어리처럼 맺혀갈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는 수현 자신을 병들게 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복수의 대상인 경철에게 복수를 행하긴 하지만 당장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단죄를 하지는 않는다. 주체에겐 감정을 표출할 대상이 반드시 필요하다.
복수의 실패
영화 속에서 수현은 결국 경철을 죽이는 것으로 복수를 끝내지만, 결코 복수에 성공했다고 볼 수 없다. 왜일까. 경철이라는 캐릭터가 그저 수현에게 당하기만 하는 것으로 그려졌다면 조금이나마 그 복수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었겠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경철은 자신이 당한 것에 대한 앙갚음으로 수현의 다른 소중한 대상들을 노린다. 이것이 수현이 간과한 아주 큰 부분이었다. 복수에 눈이 멀어서 다른 지점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그는 또 다시 소중한 대상들의 상실을 경험해야만 한다. 그리고 결국엔 경철에게 뒤늦은 죽음을 선사하지만, 경철이 죽음 앞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속죄하기란 만무하다. 경철은 수현에게 말한다. 너는 나한테 졌다고. 단두대에 경철을 묶어놓고 수현은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이어폰 너머로 경철의 죽음을 알리는 소리가 전해지자, 그때까지 마음 안에 쌓여 있던 혼재된 감정들이 터져 나온다. 복수의 대상을 단죄했지만, 결코 복수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에서 오는 복잡한 감정들이 수현의 표정으로 여실히 드러난다. 모든 대상들을 잃은 수현이 마지막에 봤던 것은 결국 악마처럼 바뀌어 있는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렇기 때문에 복수는 완벽히 성공할 수 없다.
이상 영화 <악마를 보았다>에 대한 짧은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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